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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사람 이야기.

이노 디자인 김영세.(경향신문 기사)

[사람속으로] “디지털시대 경쟁력 혁신적 디자인뿐”
입력: 2006년 03월 26일 17:18:10 : 0 : 0
 

외길은 그 존재 자체가 외로움을 안고 있다. 외길을 걷는 사람은 대체로 외롭게 보인다. 산업디자인이란 외길을 걸어온 디자이너 김영세(56·이노디자인 대표이사). 그가 걸어온 길은 분명 척박한 환경속의 외로운 길이었지만 그에게 외롭다는 표현은 신파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김영세는 그 길을 재미있게 걸어왔다. 마치 장난기 가득한 모차르트가 즉흥적 영감으로 작곡을 하듯 그는 ‘재미있게’ 디자인을 창조하고 혁신해왔다. 지난 24일은 이노디자인 설립 20주년 생일날이었다. 그가 처음 회사를 설립한 20년 전 디자인은 제품의 포장에 불과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디자인은 제품의 중심으로 그 위상이 바뀌었다. 그는 디자인은 이미지가 아니라 상품이라고 했다. 이 땅에 디자인상품을 전파한 김영세. 그를 서울 청담동 사옥에서 만났다.

#김영세의 20년, 디자인역사 20년

와이셔츠나 티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으면 구세대, 바지 바깥으로 내놓으면 신세대란 말이 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환갑이 몇년 안 남은 김영세는 분명 신세대였다.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지만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와이셔츠를 바지 바깥으로 뺀 차림은 여느 ‘사장님’과 달랐다. 5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옷차림뿐 아니라 외모에 ‘나이티’가 나지 않는다. 어찌보면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혁신을 추구해온 ‘젊은 정신’이 외모까지 젊게 하나 보다.

사장실도 특이했다. 고급스러운 나무책상과 도열하듯 배치된 가죽소파는 보이지 않았다. 심플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책상 하나에 유리로 된 원탁 테이블 하나. 사장실 분위기가 여느 회사 디자인실장 응접실 같다고 했더니 오늘로 청담동 시대를 마감하고 논현동 새 사옥으로 옮긴다고 했다. 이노디자인 20년의 한 획을 긋고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이노디자인을 설립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되돌아보니 제가 평생 디자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또 그 20년 전이었네요. 중3때 친구집에서 우연히 본 외국잡지(디자인 잡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Industrial Design)를 보고 애들 말로 ‘뿅 갔지요’. 심장이 쿵덕쿵덕 뛰었습니다. 그때 앞으로 평생 이걸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6살에 디자인을 업(業)으로 삼겠다고 결심하고 20년 후 이노디자인을 설립했다. 그후 20년 동안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가치창조를 해왔으니 20이란 숫자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디자인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설립한 20년 전과 오늘날 ‘디자인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를 따져보는 것은 한국디자인 역사를 가늠해 보는 것과 같다.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디자인은 비용’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소위 말해서 기업가들은 제품의 성능에 주목했지 디자인에 투자할 생각을 못했던 거죠. 그때 저는 디자인은 비용이 아니라 ‘이윤’이라고 강조했어요. 이제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아직도 멀었어요. 최고경영자(CEO)들도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디자인이 이윤이라는 걸 증명해 보인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대표적인 사례는 그 유명한 ‘아이리버 신화’다. 2002년 출시되자마자 대박을 터뜨린 레인콤의 MP3 플레이어 ‘프리즘아이’는 디자인을 먼저 하고 거기에 기술을 담은 ‘퍼스트 디자인’의 산물이었다. ‘퍼스트 디자인’. 이것이 바로 김영세 디자인철학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김영세는 이노디자인 2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1999년을 꼽았다. 그는 그 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월드디자인총회에 참석, 세계적인 디자이너들 앞에서 ‘디자인 우선주의’란 개념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Digital Design A to Z’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오디오(Audio)에서 지퍼(Zipper)까지 26가지 컨셉트 제품을 디자인해 첫선을 보였다. ‘이런 아이디어가 있으니 제품으로 만들 사람을 찾는다’는 식의 파격적인 전시회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최초의 이벤트였다.

미국과 한국에 회사를 두고 있는 그는 1년에 10회 정도 태평양을 건넌다. 지난 20년 동안 200여회나 비행기를 타고 다닌 셈이다. 비행기 안에서도 그는 상상을 한다. 가장 혁신적 디자인은 비행기 안에서 탄생한다고 했다. 그의 혁신적 디자인은 곧 대박이었다. 지난해 선보인 태평양의 라네즈 슬라이딩 팩트는 시판 2주 만에 무려 5만개가 팔릴 정도로 히트를 쳤다. 슬라이딩 휴대폰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힘이었다. 그는 이 제품으로 올해 독일 iF디자인상을 받았다. 그가 디자인한 제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수없이 많다. 스마트폰은 2000년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올해의 최고 상품디자인’에 뽑혔다. 한국시장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휴대용 가스버너는 93년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IDSA) IDEA 금상을, 지난해엔 아이리버 N10으로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았다. 그는 대박을 터뜨리고 싶다면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자이너를 포함시키라고 말했다.

#이노베이터시대를 예고하다

“21세기는 감성으로 대표되는 우뇌족(右腦族)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지난 2일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게임스튜디오에서 게임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한 김영세의 강연 핵심대목이다. 이성의 상징인 좌뇌를 사용하는 직종은 로봇이 대신할 수 있지만 감성을 토대로 하는 업종은 우뇌를 사용하는 인간이 우위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뇌를 사용하는 인간, 즉 감성이 뛰어난 인간이 경쟁력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엔 기술표준화로 인해 성능만으로는 차별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결국 상품의 차별화는 인간의 영감에서 탄생하는 디자인으로 결정되는 것이지요.”

그는 특히 한국인들 중에는 감성이 뛰어난 우뇌족이 많기 때문에 디지털시대에 더욱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 음악, 디자인, 골프 등에서처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류’는 우리 민족의 감성적 우위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전통 모티브가 상품화되어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상상과 꿈을 현실화하는 디자인,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상상력을 제품화하는 디자인. 이를 요약하면 디지털+디자인=드림. 일명 ‘김영세 공식’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디자인=이노베이션’이라고 강조한다. 앞으로 디자인은 디지털이라는 기술을 업고 무한대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동력은 창조성과 혁신이라고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이노베이터가 먹여 살릴 것입니다. 21세기 인간 중심의 디지털시대를 여는 부류는 이노베이터, 즉 혁신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들입니다. 디자인이란 바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입니다.”

그는 지난해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책판매 수익금으로 다시 책을 구입해 전국 초·중·고·대학교에 무료로 책을 보내고 있다. 이노베이터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영세 디자인의 파워는 변화를 추구하는 열정에 있다. 그 열정의 근원은 사랑이다. 그는 “디자인은 소비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뭘 원하는지 관심갖고 그것을 해주려고 합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아이디어, 그게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애용하는 디자인이다. 전 세계 시장의 제품마다 ‘Design by Inno’가 새겨져 있고 이노디자인을 담은 제품을 애용하는 ‘이노족’이 넘쳐나는 시대, 그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다.

〈인터뷰/이동형 매거진X부장 s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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