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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사진 이야기.

리영희.

2008년 3월 20일  산본 리영희선생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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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3271745215


[독립언론 10년 경향]“8년만에 만년필을 잡아보네”

ㆍ오리구이에 막걸리…마음 열고 4시간여 대화

리영희 선생의 말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옛날 수준의 내가 했던 말이나 글에 미치지 못하는 공허한 얘기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사회에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된다”는 이유였다. “이제 몇 해 살지 모르는 병든 세대인데 정치가 어떻고, 국가가 어떻고 생각할 여가가 있나. 그건 다 할 사람이 하는 거지. 조용하게 생을 마감할 준비만 하는 거예요.”

리영희 선생(가운데)과 김봉선 국제부장(왼쪽)·오동근 기자가 지난 20일 경기 군포의 리 선생 자택에서 인터뷰를 한 뒤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철훈기자>

리 선생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를 했을 때 “나는 쉴 권리도 없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자유’와 ‘책임’이란 말을 기둥 삼아 꼿꼿이 살아온 지식인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리 선생은 자서전 격인 ‘대화’의 서문에서 “진정한 지식인은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적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제자들로부터 오리구이를 즐긴다는 귀띔을 받은 터라 “오리구이나 함께 들고 싶다”며 약속을 받아냈다.

쉽지 않은 인터뷰의 물꼬를 튼 것은 이라크 전쟁이었다. 선생을 찾아간 지난 20일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 5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라크 이야기가 나오자 미국 비판이 쏟아졌다. 격정적이었다. ‘열강’ 끝에 ‘강부자(강남 땅 부자들의 내각)’,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등을 거론해봤지만 “그건 모르고”라며 다시 선생의 주제로 돌아왔다. 1시간30분여. 리 선생은 “이제 끝이야”라며 ‘종강’을 선포했다. 그때 일행이 들고간 책 ‘대화’를 본 모양이다. 사인을 해주겠다며 펜을 잡았다. “8년 만에 만년필을 잡아보네”라며 적어내렸다. 떨리는 손을 부축해야 했다. ‘쓰지 못하는 손으로, 리 영 희 씀. 08. 3. 20’. 흔들림은 심했지만 글씨체는 그대로였다.(사진)

오리구이 얘기를 꺼냈다. 주섬주섬 나들이 준비를 하는 사이 선생이 몇 차례나 고쳐 물었다. “바쁘면 그냥 가도 돼.” “이미 계획을 세워 왔다”는 말을 듣고서야 선생은 일행을 따라 나섰다. 음식점으로 가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게 했다. “저기 슈퍼에 가서 막걸리 몇 병 사오지.” 백미 90%짜리를 특별히 주문했다. “하나 빠트린 얘기가 있어” 하시더니 피겨 선수 김연아가 다니는 수리고등학교가 집 부근에 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단골 오리구이집은 10여분 거리였다. “소식(小食)을 하는데 오리고기는 소화가 잘돼.” 막걸리 찬가가 나왔다. “캬”하는 소리와 함께 한 모금, 또 한 모금…. 선생은 네 잔 가까이 비웠다. 막걸리에 추억을 담아 드시는 듯했다. 불콰해진 선생은 즉석에서 촬영한 디지털 카메라의 영상을 보여주자 “나 그렇게 안 생겼는데”라며 소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음영이 도드라지는 바람에 더 여위어 보이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4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아니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식사가 파할 무렵 리 선생은 꼭 새겨들으라며 ‘노자’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 김봉선·오동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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