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9일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헝클어진 머리.
쩌렁 쩌렁한 목소리.
[경향과의 만남]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보수로 치우치는 대선…눈을 떠도 앞이 캄캄”-
“내 입에서 어떤 수작이 나올 걸 기대하고 온 거요?” 첫 마디에 기가 죽었다. 백기완은 여전했다. 일흔다섯, 뱃속 깊은 곳에서 뿜어내는 음성은 쩌렁쩌렁했고, 이따금 부르쥐는 주먹은 강건했다. 대선 이야기를 하러 갔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통일과 해방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다 “꽈다당 하고 진짜 벼락이 치는 사랑, 역사를 빚어내는 사랑”을 꿈꿨다. 상식적인 질문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신문쟁이처럼 굴지 말고”라는 호통이 뒤따랐다. “매일매일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틴다는 그 앞에서 기자노릇 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내 2시간이 흘렀다. 목이 타고 시장기가 돌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대학로의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백기완을 만났다. ‘이상한’ 인터뷰였다.
-대선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대선,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지긋지긋해요. 눈을 떠도 앞이 캄캄해. 눈을 감았을 때보다 더 캄캄해.”
-왜 그렇습니까.
“선거는 고르는 게 아니에요. 자기 생각과 뜻을 실현하고 관철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가 관철할 때, 마음속의 형체가 나와야 해. 그 형체가 새뚝이야. 새뚝이란 뭐냐. 아무리 침묵같이 삼키는 썩은 늪이라도 작은 돌멩이 하나로도 썩어 문드러진 침묵이 깨지는 거거든. 그 침묵이 타파되는 미적 전환의 계기를 새뚝이라 해요. 선거 때는 이게 나오고 실현돼야 해. 지금은 정상배가 날뛰는 선거지,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그런 사람이 없어. 우리 시민들에게 좌절·절망·허물을 강요하는 것은 정상배의 짓이라니까….”
-이번 대선에선 보수진영 후보 2명의 지지율이 60%에 이릅니다.
“선거판이 보수에 낱말 하나 더 붙이면 될 것 같아요. ‘보수 반동’이라고…. 이 사회 주된 흐름이 보수 반동이에요. 권력, 정치판 모두 이렇게 보수 반동적일 수가 없어. 언론은 다른 때보다 더 심한 것 같아. 선거판이라고 덜하다고 볼 수 없지. 사회적 기본 흐름의 반영이 선거판이니까.”
-보수화의 원인이 뭔가요.
“우리 역사를 보면 1987년 여름이 결정적 분수령이었다고 생각해요. 이한열 열사가 원통하게 죽었는데 장례식때 200만명이 넘게 길거리에 나왔어요. 그건 조문만 하자는 건 아니야. 요새 말로 민주화를 열망하고 통일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모인 거야. 양적·질적으로 민주화·통일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거머쥐었던 거지. 그때 마지막에 (김대중·김영삼 후보가) 단일화했으면 군사독재는 결정적으로 청산하는 거잖아, 그런데 안했잖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어떻게 됐어. 근대 200년 동안 자생적 근대화 정신 죽이고, 자생적 삶의 터전을 망친 세력의 범죄를 합리화·합법화시켰어. 또다시 보수 반동이 기회를 얻었고, 그게 오늘날 한나라당이야. 심지어는 내가 앞장섰을 때 뒤따라오던 젊은이들도 거의 다 보수화됐어. 남의 선거운동만 했다고. 김대중·노무현…. 민주화운동 세력이 진보적 세력으로 성장을 못한 거지.”
-민주노동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노당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안할게. ‘진짜 진보’가 뭔지 물어보면 하고….”
-그럼 진짜 진보란 뭡니까.
“민노당에서 스승의 날에 나를 초청했어요. 나보고 한 말씀 하래. 진보가 뭐야? 하고 대표한테 물었더니 가만히 있어. 진보란 ‘불림’이야. 불림이 뭐냐, 춤꾼이 춤판에 뛰어들며 한 마디 외치는 소리가 불림이고, 주어진 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이루자는 한 마디가 불림이야. 진보는 주어진 판을 깨는 거야.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판을 깨는 거야.”
-권영길 후보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를 하신다면요.
“글쎄…. 딱 한 마디만 하면, 이 자본주의 문명은 지구도 망치고 사람도 망치고 벗나래(세상)도 망칠 것이니 참된 하제(희망)를 빚자는 말, 그 한 마디.”
-직접 대선에 나가신 적이 있지요.
“전술이었다니까! 민노당을 보면 너무 전술에만 매달리고 전략이 모자란 것 같아. 전략은 불림을 외칠 수 있는 세력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불림을 외칠 세력이 아니고 아우성 있잖아, 아우성만 치는 체질의 젊은이들이 (민노당에) 모여 있잖아. 다는 아니겠지만.”
-반(反)한나라당 전선이나 범개혁진영 단일화 같은 논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범여권이라는 세력을 개혁세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진보세력이라고 머리말 붙이는 사람도 있어요. 난 그렇게 생각 안해요. 범여는 가장 무서운 보수반동세력이야. 미국 독점자본의 앞잡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하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앞장섰잖아. 미국 신보수의 끄나풀이야, 어려운 낱말로 아류라고. 그 아류가, 한나라당과 아류 경쟁하는데, 하나로 만들어 어떻게 한나라당을 극복한다는 거야.”
-노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한 건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 민족끼리라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만나야 해. 하지만 만나서 뭐하냐 이게 문제야. 노대통령이 만나서 할 게 있다 이거야. 핵은 북핵이 아니야. 미국이 핵을 독점하고 있잖아. 모든 핵을 없애는 한반도 선언을 하고 왔어야 한다고.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선언했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무엇이 통일인지, 두 높은 사람이 말이라도 해보고 오라 이거였어. ‘이것이 통일’이라고 매듭짓지 않아도 좋아. 우리 민족 내부엔 더 무서운 휴전선이 있잖아. 올바른 놈과 나쁜 놈, 있는 놈과 없는 놈…. 전두환이 백두산 천지에 별장 만들어도 통일이야? 부시가 우리 한반도 지배해도 통일이야? 추상적으로 통일 문제를 제기할 때는 지났어. 진짜 통일을 말해야지. 진짜 통일은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이야.”
(한동안 우리 민중해방사상의 뿌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듣다보니 조금 반발심이 생겼다.)
-민중해방사상의 뿌리가 자생적으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프랑스 시민들, 히틀러가 쳐들어올 때 적극적으로 항쟁하자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우리나라도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굴복한 사람들이 총칼 들고 저항한 전투적, 혁명적 인간보다 적지 않았고. 사람은 끊임없이 역사와 함께 깨우치고 발전합니다. 발전할 수 있는 전환의 계기를 줘야 해요. 사람은 100% 자각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는 믿어야 해. 우리 민중이 노망 들었다고 하면 안돼.”
-(신정아·변양균 스캔들 이야기가 나왔다.)
“(신·변씨) 이름은 대고 싶지 않아. 다만 사생활이고, 사랑 문제에는 간섭 말자는 이야기가 있는데, 거짓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말만 사랑이지, 탈든 사랑이다 이거야. 사랑은 첫사랑, 풋사랑, 갓사랑이 있는데, 갓사랑이 으뜸이야. 매일 아침 매일 저녁마다 새로워지는 사랑이지. 보면 볼수록 새로워지고 정이 들고 하는 게 갓사랑이야.”
-건강은 어떠신가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보이는데요.
“난 건강이 따로 없어. 매일매일 죽기 아니면 살기야. 전두환은 매일 등산, 골프 하겠지만 나는 부럽지 않아. 요즘은 내가 이야기하고 연극할 수 있는 ‘노나메기(같이 일하고 같이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 문화원’을 하나 차리려고 해. 이 집을 팔고 대학로 저 구석에 가면 강당이 많거든. 신학철이라고 그림꾼이 있는데, 자기 그림 팔아서 땅을 사는 데 보태라고, 그림 30점을 갖고 왔어. 그림이 기가 막혀요. 그걸 상품화해서 돈을 벌지는 않으려고 해. 양심상 팔지는 않고 보여주고 싶어. 될까? 난 좌절 안해, 좌절하면 할 게 없잖아.”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자본주의 문명에 속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자본주의는 세 가지를 우상화해요. 돈 우상화, 행복 우상화, 안정 우상화.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이 세 가지에 속으면 모든 걸 잃어요. 미국의 큰 석유회사가 석유 1배럴 생산하는 데 1달러밖에 안 들어. 그런데 팔 때는 100달러라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뺏는 거야. 뺏겠다는 환상에 빠져서 망하는 거지. 인간의 가장 치사한 바람이 돈을 우상화하는 거야. 행복에는 무슨 함정이 있냐고? 나만이 행복하겠다는 것, 강남 가면 중학생 한 달 과욋값이 수백만, 수천만원이라는데, 이름있는 대학 가서 취직해서 자기만 잘 살겠다? 행복을 제도적·문화적으로 우상화하는 거야. 행복은 늪이 돼서 빠지면 못 나오는 게 되면 안돼.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르게 잘 살자는 노나메기 벗나래, 그게 ‘참 변혁’이야.”
〈글 김민아·이고은, 사진 우철훈기자〉
[Canon] Canon Canon EOS-1D Mark III (1/60)s iso800 F4.0
헝클어진 머리.
쩌렁 쩌렁한 목소리.
[Canon] Canon Canon EOS 5D (1/125)s iso500 F4.0
[Canon] Canon Canon EOS 5D (1/125)s iso500 F4.0
[Canon] Canon Canon EOS-1D Mark III (1/100)s iso800 F4.0
[Canon] Canon Canon EOS-1D Mark III (1/100)s iso800 F4.5
[Canon] Canon Canon EOS-1D Mark III (1/158)s iso500 F5.6
[경향과의 만남]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보수로 치우치는 대선…눈을 떠도 앞이 캄캄”-
“내 입에서 어떤 수작이 나올 걸 기대하고 온 거요?” 첫 마디에 기가 죽었다. 백기완은 여전했다. 일흔다섯, 뱃속 깊은 곳에서 뿜어내는 음성은 쩌렁쩌렁했고, 이따금 부르쥐는 주먹은 강건했다. 대선 이야기를 하러 갔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통일과 해방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다 “꽈다당 하고 진짜 벼락이 치는 사랑, 역사를 빚어내는 사랑”을 꿈꿨다. 상식적인 질문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신문쟁이처럼 굴지 말고”라는 호통이 뒤따랐다. “매일매일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틴다는 그 앞에서 기자노릇 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내 2시간이 흘렀다. 목이 타고 시장기가 돌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대학로의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백기완을 만났다. ‘이상한’ 인터뷰였다.
-대선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대선,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지긋지긋해요. 눈을 떠도 앞이 캄캄해. 눈을 감았을 때보다 더 캄캄해.”
-왜 그렇습니까.
“선거는 고르는 게 아니에요. 자기 생각과 뜻을 실현하고 관철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가 관철할 때, 마음속의 형체가 나와야 해. 그 형체가 새뚝이야. 새뚝이란 뭐냐. 아무리 침묵같이 삼키는 썩은 늪이라도 작은 돌멩이 하나로도 썩어 문드러진 침묵이 깨지는 거거든. 그 침묵이 타파되는 미적 전환의 계기를 새뚝이라 해요. 선거 때는 이게 나오고 실현돼야 해. 지금은 정상배가 날뛰는 선거지,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그런 사람이 없어. 우리 시민들에게 좌절·절망·허물을 강요하는 것은 정상배의 짓이라니까….”
-이번 대선에선 보수진영 후보 2명의 지지율이 60%에 이릅니다.
“선거판이 보수에 낱말 하나 더 붙이면 될 것 같아요. ‘보수 반동’이라고…. 이 사회 주된 흐름이 보수 반동이에요. 권력, 정치판 모두 이렇게 보수 반동적일 수가 없어. 언론은 다른 때보다 더 심한 것 같아. 선거판이라고 덜하다고 볼 수 없지. 사회적 기본 흐름의 반영이 선거판이니까.”
-보수화의 원인이 뭔가요.
“우리 역사를 보면 1987년 여름이 결정적 분수령이었다고 생각해요. 이한열 열사가 원통하게 죽었는데 장례식때 200만명이 넘게 길거리에 나왔어요. 그건 조문만 하자는 건 아니야. 요새 말로 민주화를 열망하고 통일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모인 거야. 양적·질적으로 민주화·통일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거머쥐었던 거지. 그때 마지막에 (김대중·김영삼 후보가) 단일화했으면 군사독재는 결정적으로 청산하는 거잖아, 그런데 안했잖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어떻게 됐어. 근대 200년 동안 자생적 근대화 정신 죽이고, 자생적 삶의 터전을 망친 세력의 범죄를 합리화·합법화시켰어. 또다시 보수 반동이 기회를 얻었고, 그게 오늘날 한나라당이야. 심지어는 내가 앞장섰을 때 뒤따라오던 젊은이들도 거의 다 보수화됐어. 남의 선거운동만 했다고. 김대중·노무현…. 민주화운동 세력이 진보적 세력으로 성장을 못한 거지.”
-민주노동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노당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안할게. ‘진짜 진보’가 뭔지 물어보면 하고….”
-그럼 진짜 진보란 뭡니까.
“민노당에서 스승의 날에 나를 초청했어요. 나보고 한 말씀 하래. 진보가 뭐야? 하고 대표한테 물었더니 가만히 있어. 진보란 ‘불림’이야. 불림이 뭐냐, 춤꾼이 춤판에 뛰어들며 한 마디 외치는 소리가 불림이고, 주어진 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이루자는 한 마디가 불림이야. 진보는 주어진 판을 깨는 거야.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판을 깨는 거야.”
-권영길 후보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를 하신다면요.
“글쎄…. 딱 한 마디만 하면, 이 자본주의 문명은 지구도 망치고 사람도 망치고 벗나래(세상)도 망칠 것이니 참된 하제(희망)를 빚자는 말, 그 한 마디.”
-직접 대선에 나가신 적이 있지요.
“전술이었다니까! 민노당을 보면 너무 전술에만 매달리고 전략이 모자란 것 같아. 전략은 불림을 외칠 수 있는 세력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불림을 외칠 세력이 아니고 아우성 있잖아, 아우성만 치는 체질의 젊은이들이 (민노당에) 모여 있잖아. 다는 아니겠지만.”
-반(反)한나라당 전선이나 범개혁진영 단일화 같은 논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범여권이라는 세력을 개혁세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진보세력이라고 머리말 붙이는 사람도 있어요. 난 그렇게 생각 안해요. 범여는 가장 무서운 보수반동세력이야. 미국 독점자본의 앞잡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하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앞장섰잖아. 미국 신보수의 끄나풀이야, 어려운 낱말로 아류라고. 그 아류가, 한나라당과 아류 경쟁하는데, 하나로 만들어 어떻게 한나라당을 극복한다는 거야.”
-노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한 건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 민족끼리라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만나야 해. 하지만 만나서 뭐하냐 이게 문제야. 노대통령이 만나서 할 게 있다 이거야. 핵은 북핵이 아니야. 미국이 핵을 독점하고 있잖아. 모든 핵을 없애는 한반도 선언을 하고 왔어야 한다고.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선언했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무엇이 통일인지, 두 높은 사람이 말이라도 해보고 오라 이거였어. ‘이것이 통일’이라고 매듭짓지 않아도 좋아. 우리 민족 내부엔 더 무서운 휴전선이 있잖아. 올바른 놈과 나쁜 놈, 있는 놈과 없는 놈…. 전두환이 백두산 천지에 별장 만들어도 통일이야? 부시가 우리 한반도 지배해도 통일이야? 추상적으로 통일 문제를 제기할 때는 지났어. 진짜 통일을 말해야지. 진짜 통일은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이야.”
(한동안 우리 민중해방사상의 뿌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듣다보니 조금 반발심이 생겼다.)
-민중해방사상의 뿌리가 자생적으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프랑스 시민들, 히틀러가 쳐들어올 때 적극적으로 항쟁하자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우리나라도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굴복한 사람들이 총칼 들고 저항한 전투적, 혁명적 인간보다 적지 않았고. 사람은 끊임없이 역사와 함께 깨우치고 발전합니다. 발전할 수 있는 전환의 계기를 줘야 해요. 사람은 100% 자각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는 믿어야 해. 우리 민중이 노망 들었다고 하면 안돼.”
-(신정아·변양균 스캔들 이야기가 나왔다.)
“(신·변씨) 이름은 대고 싶지 않아. 다만 사생활이고, 사랑 문제에는 간섭 말자는 이야기가 있는데, 거짓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말만 사랑이지, 탈든 사랑이다 이거야. 사랑은 첫사랑, 풋사랑, 갓사랑이 있는데, 갓사랑이 으뜸이야. 매일 아침 매일 저녁마다 새로워지는 사랑이지. 보면 볼수록 새로워지고 정이 들고 하는 게 갓사랑이야.”
-건강은 어떠신가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보이는데요.
“난 건강이 따로 없어. 매일매일 죽기 아니면 살기야. 전두환은 매일 등산, 골프 하겠지만 나는 부럽지 않아. 요즘은 내가 이야기하고 연극할 수 있는 ‘노나메기(같이 일하고 같이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 문화원’을 하나 차리려고 해. 이 집을 팔고 대학로 저 구석에 가면 강당이 많거든. 신학철이라고 그림꾼이 있는데, 자기 그림 팔아서 땅을 사는 데 보태라고, 그림 30점을 갖고 왔어. 그림이 기가 막혀요. 그걸 상품화해서 돈을 벌지는 않으려고 해. 양심상 팔지는 않고 보여주고 싶어. 될까? 난 좌절 안해, 좌절하면 할 게 없잖아.”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자본주의 문명에 속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자본주의는 세 가지를 우상화해요. 돈 우상화, 행복 우상화, 안정 우상화.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이 세 가지에 속으면 모든 걸 잃어요. 미국의 큰 석유회사가 석유 1배럴 생산하는 데 1달러밖에 안 들어. 그런데 팔 때는 100달러라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뺏는 거야. 뺏겠다는 환상에 빠져서 망하는 거지. 인간의 가장 치사한 바람이 돈을 우상화하는 거야. 행복에는 무슨 함정이 있냐고? 나만이 행복하겠다는 것, 강남 가면 중학생 한 달 과욋값이 수백만, 수천만원이라는데, 이름있는 대학 가서 취직해서 자기만 잘 살겠다? 행복을 제도적·문화적으로 우상화하는 거야. 행복은 늪이 돼서 빠지면 못 나오는 게 되면 안돼.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르게 잘 살자는 노나메기 벗나래, 그게 ‘참 변혁’이야.”
▲백기완은 누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해온 재야인사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소장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부모·작은형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젊은날 농민운동과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에 힘썼고 67년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가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가 된다. 73년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에 앞장섰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서울지부 의장, 전노협 고문 등을 지냈다. 87년 대선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야당의 후보 단일화·연립정부 구성을 촉구하며 사퇴했다. 92년 대선에서는 다시 민중후보로 나서 24만표를 얻었다. 2002년 월드컵 직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히딩크 감독과 각별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
〈글 김민아·이고은, 사진 우철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