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차박(車泊·차에서 하는 캠핑)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이다. 일하느라 혹사당한 머리를 식히고 싶다. 용하게도 한 주일을 건너온 내 자신에게 1박2일 휴가를 주고 싶은데 특별한 방법이 없을까?
있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의외로 쉽다. 일단 주섬주섬 편한 옷을 챙겨 입는다. 쌀이며 밑반찬이며 먹을거리를 조금 싸서 주차장으로 간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건다. 그러면 이미 절반은 ‘탈출’ 성공이다. 2시간 안쪽 거리의 장소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연다. 1인용 의자와 테이블을 꺼내고 차량과 연결된 작은 텐트를 치고 조명을 켠다.
숙박을 위해 ‘세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총 10분. 출출하면 밥을 짓든지 마트에서 사온 간단 조리식품을 데워 먹는다. 속이 채워지면 꿀 맛 같은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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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바람, 맑은 햇살을 독식하며 와이파이 스피커를 꺼내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을 듣기도 하고, 흐르는 개울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기도 한다.
밤이 되면 서늘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거나, 물소리를 벗 삼아 ‘곡차’ 한 잔 해도 좋다. 내가 가끔씩 즐기는 ‘차박(車泊·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캠핑)’의 진경이다.
지난달 21일 어스름이 깔릴 무렵 강원도 홍천 모곡 밤벌유원지에서 차박하는 모습을 직접 렌즈에 담았다. 차박은 숲, 계곡, 해안도로, 강변, 주차장 등 발길이 멈추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자유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가볍고 경쾌한’ 나만의 캠핑이다.
지난달 21일 어스름이 깔릴 무렵 강원도 홍천 모곡 밤벌유원지에서 차박하는 모습을 직접 렌즈에 담았다. 차박은 숲, 계곡, 해안도로, 강변, 주차장 등 발길이 멈추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자유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가볍고 경쾌한’ 나만의 캠핑이다.
캠핑 열풍 속에 캠핑 장비가 고급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와 반대로 차에서 자면서 백패킹 장비를 이용해 ‘더 간단하고 기동성 있는’ 캠핑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차에 간단한 장비만 싣고 훌쩍 떠나 캠핑장이건 공원 주차장이건 강가의 노지건 어디든 주차하면 그곳이 캠핑장이 되는 ‘차박’이다. 매트리스 등 취침 장비와 백패킹용 소형 접이식 의자나 테이블 등 꼭 필요한 생활도구만 있으면 된다. 숲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도 있고, 해안도로에서 일몰을 보며 잠들고 일출을 보며 눈을 뜰 수도 있다. 밥을 해 먹기 귀찮을 경우 잠은 차에서 자고 식사는 근처 맛집을 찾아 해결하는 차박족도 있다.
차박을 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캠핑 전용 차량이나 캠핑 트레일러를 이용하는 방법, 차량 지붕 위에 텐트를 치는 루프톱 텐트를 이용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승합차나 SUV 차량의 뒷좌석을 눕혀서 숙박하는 방법이다. 이 밖에 승용차나 경차를 텐트 대신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불편하긴 하지만 앞좌석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젖힌 뒤 의자 위로 간이침대를 놓아 잠자리로 쓴다.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름을 꺼린다. 차박족도 예외가 아니다. 휴가철 캠핑장은 바다고 계곡이고 어딜 가나 사람들로 넘친다. 다닥다닥 붙은 텐트들은 난민촌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차박족은 여름보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밤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본격적으로 ‘거동’을 시작한다.
차박은 일반적인 캠핑보다 장점이 많다. 일단 한 시간 이상 텐트 치느라 땀을 뻘뻘 흘릴 일이 없다. 습기나 냉기 걱정도 적다. 텐트에서 흔히 발생하는 이슬맺힘이 없어 쾌적하다. 그만큼 잠을 설치거나 자고 나면 몸이 뻐근해지는 ‘텐트증후군’이 덜하다.
차박의 안락함은 시트를 얼마나 평탄하게 하느냐에 달렸다.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는데 의자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눕히고 굴곡진 부분이나 빈 공간에 물건을 채운 뒤 그 위에 자충매트를 깔기도 하고, 공간지가 들어가 있어 그걸 공기로 부풀리는 에어박스류를 이용하기도 한다. 기존 자동차 중에선 접으면 의자가 차량 바닥으로 들어가는 올란도나 구형 카니발 리무진 모델이 차박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난달 22일 강원도 홍천 칡소 폭포 인근 노지에서 즐긴 차박. 트렁크 문을 열자 칡소 폭포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지난달 22일 강원도 홍천 칡소 폭포 인근 노지에서 즐긴 차박. 트렁크 문을 열자 칡소 폭포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가을이나 겨울은 차박의 계절이다. 문제는 추위다. 차가 바람을 막아 주기는 하지만 외부와 내부 온도가 같아지기 때문에 새벽에는 한기를 느끼게 된다. 집에서 사용하던 이불을 덮어도 되지만 부피가 크기 때문에 차량 내 수납이 문제다. 겨울용 침낭을 권한다. 새벽 기온 10도 정도까지는 차내에서 겨울용 침낭만으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그 이하로 내려가면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안고 자거나 유단포를 사용하면 된다. 파워뱅크가 있으면 12V 온열매트를 침낭 속에 넣고 자면 0도까지도 따뜻하게 잘 수 있다. 영하의 날씨에 차박을 할 경우엔 트렁크를 열고 작은 도킹 텐트를 치고 텐트 안에 석유난로를 피운다. 이때 환기 구멍을 내는 것은 필수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도 꼭 준비해야 한다.
차박의 매력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비 오는 날 차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전기에 감전되는 것보다 여운이 오래간다.
산자락에 주차한 ‘나만의 집’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확 밀려드는 새벽 숲 공기,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는 별빛, 금방 한 냄비 밥의 그 구수한 냄새… 한 번 맛보면 떨치기 힘든 유혹이다. 텐트 캠퍼들에겐 좀 미안한 일이지만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때 혼비백산해서 철수하는 캠퍼들을 차창으로 바라보는 느긋함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삶이 팍팍하고 고될수록 사람들은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은 빠듯하고 휴식할 시간은 모자란다. 그럴 때 차박여행을 떠나길 권한다. 몇 가지만 준비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여행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정보도 넘친다. 나는 지금도 오래된 승합차를 끌고 발걸음 닿는 대로 돌아다닌다. 그 래서 감히 말할 수 있다. 차박에는 자유와 여유가 있다!
차박, 이것만은!
화장실 차박의 난제 중 난제는 화장실이다. 캠핑장을 이용하면 문제가 없지만 자유로움을 원하는 사람들은 캠핑장보다 노지를 선호한다. 그럴 경우 근처에 깨끗한 화장실이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차박족 중에는 이동식 간이화장실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화장실 사용을 포기하면 차박지의 선택 폭은 훨씬 넓어진다.
전기 전기 문제도 신경 쓰인다. 노지에선 전기 사용이 막막하다. 조명, 핸드폰, 노트북, 선풍기, 온열매트… 차에 12V 배터리가 달려 있지만 시동용이다. 과도하게 사용하면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먹는다. 12V 사용이 가능한 파워뱅크를 추천한다. 값이 좀 나가지만 있으면 꽤 편리하다. 선풍기, 온열매트 등을 12V용으로 준비하는 걸 잊지 말자.
쓰레기 차박지마다 쓰레기로 몸살이다. 주민들의 민원으로 좋은 차박지가 폐쇄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관리되는 차박지에선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놓고, 관리가 안되는 지역에선 쓰레기를 꼭 집으로 되가져와야 한다. 차박 고수는 타이어 자국 이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글·사진 우철훈 디지털영상팀장 photowoo@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m.biz.khan.co.kr/view.html?artid=201610051740005&code=900370&med=khan#csidxb87b520be85189985870cb57b295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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