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던 날 연평도에서 연안부두로 돌아오는 여객선에서 승객이 찍은 사진을 각사가 모두 1면에 실었습니다.
이날 각사 사진기자들은 여객선에서 승객이 찍은 사진을 구하기 위해 연안부두에서 사진찍으신 분~ 을 목놓아 외쳤지요.
그날 밤 소방서 구조대와 소방차량을 싣고 연평도로 들어가는 배편이 있었습니다.
각사 사진기자들은 정보를 입수하고 배를 얻어 타려고 부두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요.
소방관계자들과 어렵게 접촉을 해서 타려는 기자가 너무 많으니 10명만 pool로 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잠깐 설명 pool이란?
현장이 협소하거나 상황이 좋지않아 모든 사진기자가 취재할 상황이 안되는 경우 몇명이 대표로 취재하고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
하지만 잠시 후 군부대 관계자가 나타나 타고 있던 풀기자를 위험하다며 함게 갈 수 없다고 하선을 요청.
이 과정에서 순순히 내린 순진한(?) 사진기자 여럿이 있었고, 몰래 소방차로 숨어든 한겨레 신문 박종식씨가 있었지요.
박종식씨가 배에 숨어들어 연평도로 항하고 있을 즈음 저는 후배 강윤중씨에게 내일 아침 배을 구해서 연평도로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후배에게 전날 포탄이 떨어졌던 곳으로 들어가라고 해야하는 것이 사진부장의 운명이지요.
10여년 전에 저도 선배의 명령으로 무너져내린 삼풍백화점 지하로 경찰 눈을 피해 들어갔던
사진기자의 운명인 것 처럼요.
그런데 웃기는(?) 것은 말을 하는 부장도 받아들이는 후배도 아주 담담하다는 거지요. 아마 서로 운명이다라고 생각해서 일까요?
다음날 아침 연평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은 운항을 중지한 상태이고 연평도로 들어가야만 하는 사진기자들은 남항 부두에 몰려있었습니다.
부두에서 복구반을 태운 배가 연평도로 떠나기 때문이었지요.
다들 이 배을 얻어타려고 협의를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아니 모두 실패한 건 아니구요.
한명을 제외한 모두가 실패한 거지요.
이배에는 연합뉴스 총각사진기자 박지호씨가 복구반이 입는 쪼끼를 입고 타고있었던 거지요.
멀리서 박지호씨를 발견한 사진기자들이 항의를 했지만 떠나는 배를 멈출 수는 없었지요.
이날 강윤중씨에게 중간과정을 보고받는 저의 눈은 옹진군청 홍페이지에 올라있는 연평도 피격사진에 온통 쏠려있더랬습니다.
연평도 내부사진이 처음이었거든요.
마감이 빠른 석간 문화일보는 옹진군청 제공 사진을 1면에 쓰고 조간신문들은 옹진군청 사진과 연합뉴스 박지호씨의 사진으로 1면을 도배했습니다.
안에도 옹진군청,옹진군청,옹진군청,옹진군청,옹진군청, 제공 제공 제공
연이틀 큰사건의 현장에 자사 사진기자가 없는 것은 사진부장으로서 참 불행한 겁니다.
이날 소방차 속에 숨어들어간 한겨레 박종식씨는 참 많이도 사진을 보냈더군요.
한겨레 1면에는 122밀리 방사포탄이 불발로 땅바닥에 박혀있는 사진을 썼습니다.
아! 경향신문 사진부장 가슴에도 포탄이 와서 박힙니다.
한겨레 신문 이정우 사진부장은 아마 시원한 맥주 한 잔 했을 겁니다.
다음 날 경향신문 김기남씨가 결국 들어갔습니다.
여객선으로 많은 사진기자들과 함께요.
둘째날 저는 몰랐지만 경향신문 사진부 후배들이 모여서 술 한잔을 했다더군요.
첫 날 배에 숨어들어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자아비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 후배들에게 첫날 껀으로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말이 필요없지요. 본인들도 기분 꿀꿀 할텐데 제가 뭐라고 해봐야...
내일 김영민씨를 대신 포탄밭으로 보냅니다. 교대지요.
김영민씨도 제가 가라는 말에 너무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사진기자의 운명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