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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 세상 2006] 울진군 금강송 군락지
붉고 곧은 줄기, 사철 푸른 잎. 우리 소나무, 금강송(金剛松)은 소나무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심지가 곧다. 그래서 금강이다. 금강송의 피는 뜨겁고 기개는 시퍼렇다. 거기 함께 사는 사람도 어찌 금강송을 닮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길을 탐방객들이 산책하고 있다. |
광복을 맞은 지 61년. 혹독하게 덥고 추웠던 세월을 이겨내고 금강송은 또 다시 아름드리 ‘한국의 소나무’로 우뚝 섰다.
금강송은 태백산맥 줄기인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의 산림지역에 자라는 소나무를 일컫는 말이다. 기후와 토질의 영향으로 나무가 크고 곧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주로 궁궐을 지을 때 건축자재로 사용됐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왕족이 죽었을 때 쓰는 관을 만드는 나무로 금강목을 사용했다.
금강송 몸통 속의 누런색을 띠는 부분에 송진이 적절히 베어 있어 천연 방부처리가 돼 잘 썩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황장목이라고 했다. 조선 조정은 황장목을 원활하게 조달하고 백성의 도벌을 막기 위해 금강송이 자라는 곳곳을 벌목할 수 없는 금산으로 지정했다.
아침해가 비추는 새벽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 |
경북 울진 소광리의 자연석에는 금산의 경계와 조선 조정에서 황장목의 벌목을 금지하고, 이를 관리하는 책임자를 알려주는 황장봉표가 아직도 남아 있다.
방학을 맞아 금강소나무 숲을 찾은 어린이들이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일제말 이 일대의 금강송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나르는 일에 17년간 강제노역을 해온 소천면 구마동계곡의 안세기옹(81)은 “당시 다닐 수 없는 곳까지 소달구지가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아름다운 금강송의 씨를 말리듯이 벌목해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소광리의 520년된 금강소나무. 지름이 96센티미터나 된다. |
이후 많은 세월동안 각종 활엽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소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었으나 사람의 접근이 힘든 절벽 등에 남아 있던 일부 금강송이 번식을 했다. 또 오랜 기간 남부지방산림청과 지역 주민들이 노력하고 꾸준히 보살핀 덕에 울진군 서면 소광리와 봉화군 일대에 금강송 군락지가 형성돼 최근 47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수령 150년에서 500년까지의 거대한 금강송 군락지를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일제시대 금강송을 벌목해 소를 이용 운송하는 모습.(사진제공/남부지방산림청. 사진 왼쪽) 일제시대 일본 복장을 한 사람이 금강소나무를 베고 있다.(사진제공 남부지방산림청) |
남부지방산림청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금강송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주말마다 숲 해설가를 배치, 운영하고 있다. (054)783-7074
〈사진·글 우철훈기자〉
입력시간: 2006.08.13 17:35 | 기사제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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